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 (문단 편집) == 주요 작품 및 특징 == [include(틀:라흐마니노프의 전 작품)] [youtube(59cLZSkkjPA)] ▲ [[교향곡 제2번(라흐마니노프)|교향곡 2번 3악장 Adagio]]. 아름다운 목관과 현악의 울림으로 유명하다. 이 곡 덕분에 글린카 상을 받게 된다. [youtube(d4uQm_seVIk)] ▲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제18변주. [[피아노]]는 [[발렌티나 리시차|발렌티나 리시차(Valentina Lisitsa)]]. '''198cm'''나 되는 거대한 신체에서 나오는 매우 긴 팔과 '''30cm를[* 쉽게 말하자면 13도를 넘게 짚을 수 있는 손 크기를 가졌다고 보면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아노 가온 도에서 높은 라까지 벌릴 수 있다는 얘기] 넘는''' 넓고 두툼한 손의 소유자로 작곡가 본인의 사기적인 신체 스펙이 반영되어 있다. 10도 이상으로 손을 찢으며 건반을 4개 이상을 누르는 옥타브와[* [[https://www.youtube.com/watch?v=og5KGiK1wig|예시]] 대략 10도까지 편하게 집을 수 있는 너비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됐을 음표가 떡칠되어 있고[*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간결한 작곡법에 매료되어 불필요한 음표는 무조건 뺀 [[프레데리크 쇼팽]]과 비교되는 점. "아니 뺀 게 그 정도야?"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지만 실제로 쇼팽의 음표사용은 매우 경제적이다. 음표 하나만 빼먹어도 엄청나게 티가 난다. ], 이 모든 것을 모두 물 흐르듯이 표현해야 한다. 전세대 낭만주의 기교파들과 비교했을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압도적으로 잦은 4개음 옥타브 연사와 엄청난 너비의 왼손 아르페지오인데, 이것만으로도 손에 주는 피로도가 차원을 달리한다. 이러니 아무리 타고난 테크닉과 센스가 있어도 신체적 스펙이 받쳐주질 않으면 최선을 다해 친다 해도 힘들어 하는 모습이 티 나기 쉽다.[* 시원하게 몰아쳐야 하는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 3악장의 피날레 부분에서 계속 쉼표를 찍는 게 대표적인 예시다. 정말로 힘든 부분인 것은 사실이다만, 냉정히 말해 이런 경우는 본인 체력의 한계를 망각한 피아니스트의 선곡 미스일 뿐이다 ]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기교를 자랑하기 위해서 이렇게 어려운 곡들을 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는 과시하는 성격이 전혀 아니였고 그의 녹음을 들어보면 그 어떤 어려운 패시지도 간단하게 흘려보낸다. 심지어 그 악명 높은 3번 협주곡조차도! 따라서 이는 그냥 천재의 무심함에서 나오는 산물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면모를 잘 보여주는 예시가 3번 협주곡의 작곡 일화인데, 자신이 존경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사랑하는 친구인 [[요제프 호프만]]를 위해 3번을 선물/헌정했으나, 호프만의 손이 옥타브를 겨우 짚을 정도로 작다는 것을 전혀 배려하지 못했다. [* [[밥 로스|이분]]의 "어때요 [[참 쉽죠?]]"를 음악판으로 본의 아니게 재현해 버린 셈이다.] 문서 전체에서 피아노 곡 위주로 서술되었지만, 여러 다른 악기들을 이용한 작곡도 많이 했다. 그와 함께 낭만시대 피아노의 거장 취급을 받는 [[프레데리크 쇼팽]][* 이쪽은 피아노곡만 남긴 것은 물론이고 오케스트레이션 실력이 별로라는 평가가 많다. 다만 그가 피아노와의 협주적인 작품 외에는 오케스트라 작품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으므로 진짜 오케스트레이션에 재능이 없었던 것인지, 피아노를 돋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케스트레이션을 축소시킨 것인지는 불명.]이나 [[프란츠 리스트]][* 교향시 3번 '전주곡'과 같이 매우 뛰어난 작품도 작곡했지만 피아노가 사용되지 않은 작품들은 그다지 많은 수의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다.]와는 구별되는 점이다. 작곡 스타일도 다양해서, 현악사중주 1번의 2악장 스케르초는 많은 대표적인 작품들이 대체로 암울하고 어두운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고 발랄하다. 현악사중주 1번은 1, 2악장 모두가 명곡이니 그의 초기곡들을 듣고 싶다면 찾아서 들어보는 것도 좋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관통하는 주제에는 크게 종교(종소리)와 우울증(죽음), 그리고 러시아가 있다. 라흐마니노프 스스로가 어렸을 때 정교회의 예배나 니주니-노브고르드 성당에서 들었던 종소리에 영감을 받았다고 했었고, 그의 작품들 대부분이 - 피아노협주곡 2번 1악장의 도입부 특유의 피아노 타건과 합창교향곡 "종"[* 각 악장마다 금종(환희), 은종(결혼), 동종(공포), 쇠종(죽음)을 묘사한 합창 교향곡. [[에드거 앨런 포]]가 쓴 동명의 시를 기반으로 했다고 한다.], 전주곡 3-2 [* 아사다 마오가 피겨 프로그램에 사용해서 유명해진 곡] 등 교회의 종소리와 정교회의 엄숙함이 짙게 묻어나온다. 기악곡에 묻어나오는 종교적 색채 외에도 종교에 관련한 작품도 많이 작곡했다. 우울증은 앞에서 언급했던 교향곡 1번의 혹평으로 3년간 슬럼프인 것도 있지만, 지주였으나 방탕한 삶을 살아 가정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와 평소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 슬럼프 시기에 사촌이랑 결혼한 것에 대한 정교회의 비난 등 라흐마니노프의 작곡 환경에서 심적으로 억누르는 요소가 정말 많았다. 또한 조국이 소비에트 혁명에 휩싸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치듯 유럽으로, 결국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고 그는 죽을 때까지 조국을 그리워했다. 조국을 떠난 후 했던 인터뷰나 평소의 의식주도 그렇지만 음악적으로도 '러시아인다웠다'고. 그가 망명 후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4번(라흐마니노프)|피아노 협주곡 4번]]과 그의 마지막 작품 [[교향적 무곡(라흐마니노프)|"교향적 무곡(춤곡)"]]에서는 러시아 특유의 서정성을 지울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요소들이 작곡가가 명곡을 뽑아내는 밑거름이 되었지만... 이 외에도 작품관을 관통하는 또 다른 요소로는, 그레고리안 성가 중 진노의 날의 동기가 존재한다. 그의 많은 작품이 이 동기를 내포하거나 모티프로 사용한다. 그의 피아노 소나타 1번, 피아노 협주곡 2, 3번, 파가니니의 주제에 대한 광시곡, 전주곡 op.32 no.4, 죽음의 섬, 교향곡 3곡 전부, 교항적 무곡 3번 등 매우 많은 곡에서 이 동기를 사용하였다. 이 중, 죽음의 섬과 교향적 무곡 3번은 아예 이 동기를 주선율로 삼아 곡을 완성시킨다. 2011년에 호주의 라임라이트 매거진이 현존하는 유명 피아니스트 100인에게 (그리고리 소콜로프, 안드라스 쉬프, 알프레드 브렌델, 등) 자신들의 우상을 뽑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1위를 했다. (2위부터 5위까지 호로비츠, 리히터,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에밀 길렐스). [[http://www.limelightmagazine.com.au/features/greatest-10-pianists-all-time|#]] [youtube(BXTH0QIC1LE)] ▲ 영화 [[샤인]]에 소개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1악장의 카덴차 연습 장면. 두 개 존재하는 카덴차 중 Ossia 버전이다. 생애 전반과 사후 몇십년간 끊임없이 비판과 저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살롱 음악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기도 했고[* 물론 이것은 굴드가 전체적으로 낭만파 음악 자체를 좋아하지 않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진보적인 성향의 인물들은 과거의 작곡법을 답습하기만 했을 뿐 그 어떤 음악적 발전도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라흐마니노프 연주로 유명한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조차도 마리아 유디나가 자신을 가리켜 '그는 라흐마니노프가 어울리는 피아니스트'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뭔가 비꼬는 말로 알아듣고 언짢아했다고 한다. 그만큼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현대적이지 못한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 그러나 이런 기법적인 저평가도 무조음악을 필두로 실험적인 기법이 심화되던 근대 클래식 기준으로만 생각했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다. 라흐마니노프의 활동 시기에는 인상주의 사조도 겹쳐 있고,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원 동기 스크랴빈이 구축했던 조성과 무조성 사이의 독자적인 어법의 영향이 분명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도 없지 않고, 재즈가 태동하기도 했으며 거슈윈처럼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 케이스도 있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모든 흔적을 아우르는 한편 러시아적 감성이라는 일관성 아래 너무 실험적 측면이 강조되거나 융합이 미숙해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듣기 좋은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고, 또 음악이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도록 충실한 주제 전개 기법과 비르투오소까지 갖췄다. 다른 작곡가 중에도 이렇게 양식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고전미에 충실한 구성력과 현대까지 통용되는 감성을 모두 갖춘 케이스는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단지 시대적으로 눈에 띄는 혁신이 아닐 뿐이지 라흐마니노프 개인의 예술성과 그 희소성은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았던 것이다. 이를 나타내듯 대중적으로는 늘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널리 사랑받는 편이었으며, 음악학자들의 냉담한 평도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한 70년대 이래로는 많이 나아진 편. 피아니스트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은 인터뷰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매우 긴 시간 동안, 또는 영원히 주요 레퍼토리로 연주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런저런 평과 별개로 라흐마니노프 스스로는 개작도 자주 할 만큼 자신의 작품에 쉽게 만족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특히 그의 많은 작품에서 나오는 중반부의 다소 장황한 전개가 스스로도 컴플렉스였는지 원래 평이 좋았던 피아노 소나타 2번을 너무 축소했다가 역효과가 난 사례도 있고, 대표작 중 하나인 교향곡 2번도 아예 삭제 연주 관행을 용인해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